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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삶의 여유

티빙의 첫 번째 사극 우씨왕후,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그려낼까

 

 

TVING의 첫 사극인 드라마 우씨왕후는 고구려의 9대왕 고국천왕과 10대왕 산상왕, 두 임금의 왕후였던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고국천왕과 산상왕은 형제 사이이기도 했는데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산상왕 조에 따르면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는 채로 돌아가시자 우씨왕후는 그날밤 비밀리에 왕의 동생인 발기를 찾아가서 왕이 후손이 없으니 그대가 마땅히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발기는 왕후가 밤늦게 자신을 방문한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우씨왕후는 곧바로 발기의 동생인 연우를 찾아갑니다. 연우는 밤늦은 시간임에도 예를 갖추고 연회를 베풀며 환대했고 우씨왕후도 연우에게 의지하기로 마음을 먹고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둘은 마음이 통해 궁궐로 돌아올 때 손을 잡고 들어섰고 다음날 우씨왕후는 고국천왕의 유언이라고 꾸며서 신하들로 하여금 연우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고 연우는 산상왕이 됩니다

연우가 왕위에 오르자 분노한 발기는 요동태수에게 군사를 빌려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외적의 군대까지 빌려 고구려를 공격하는 행태에 백성들의 마음은 돌아섰고 전투에서 패한 발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며 2대에 걸쳐 왕후가 된 우씨왕후,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실이 어떤 드라마로 탄생할지 기대가 되네요

 

 

삼국사기에는 우씨왕후와 고국천왕의 죽음, 산상왕의 즉위 과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권제16 고구려본기제4 산상왕 조

산상왕이 왕위에 오르다(197년 5월)

산상왕은 이름이 연우, 또 다른 이름은 위궁이고,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위서(魏書)』에는 “주몽의 후손 궁이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이 태조대왕이다. 지금의 왕은 이 태조의 증손인데 역시 태어나면서 사람을 보는 것이 증조 궁과 비슷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서로 비슷한 것’을 불러 ‘위(位)’라고 하므로 이름을 위궁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었기에 연우가 왕위를 이었다.

처음에 고국천왕이 죽었을 때에 왕후 우씨가 비밀리에 왕의 상(喪)을 알리지 않고 밤에 왕의 동생 발기의 집으로 가서 말하기를, “왕이 후손이 없으니 그대가 마땅히 이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발기는 왕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정하는 운수는 돌아가는 곳이 있으므로 가볍게 의논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부인이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어찌 예라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후는 부끄러워하며 곧 연우의 집으로 갔다. 연우가 일어나서 의관을 갖추고, 문에서 맞이하여 자리로 안내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왕후가 말하기를, “대왕이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발기가 연장자로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겠으나, 첩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난폭하고 거만하며 무례하여 당신을 보러 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연우가 더욱 예의를 갖추며 친히 칼을 잡고 고기를 썰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다쳤다. 왕후가 치마끈을 풀어 다친 손가락을 싸매주었다. 돌아가려 할 때 연우에게 일러 말하기를, “밤이 깊어서 예기치 못한 일이 있을까 염려되니, 그대가 나를 궁까지 바래다주시오.”라고 하였다. 연우가 그 말에 따랐다. 왕후가 손을 잡고 궁으로 들어가서, 다음날 새벽이 되자 선왕의 왕명이라 속이고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연우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발기가 이를 듣고 크게 화가 나서 병력을 동원해서 왕궁을 포위하고 소리쳐 말하기를, “형이 죽으면 아우가 잇는 것이 예이다. 네가 차례를 뛰어넘어 왕위를 빼앗는 것은 큰 죄이다. 마땅히 빨리 나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처자식까지 목베어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연우가 3일간 문을 닫고 있고, 나라 사람들도 또한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

발기는 상황이 어려운 것을 알고 처자를 거느리고 요동으로 도망가서 태수 공손탁을 보고 알리기를, “나는 고구려 왕 남무의 친동생입니다. 남무가 죽고 아들이 없자 나의 동생 연우가 형수 우씨와 모의하고 즉위하여 천륜의 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때문에 분하여 상국에 투항하러 왔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병사 30,000명을 빌려주어, 그들을 쳐서 난을 평정할 수 있게 해주소서.”라고 하였다. 공손탁이 그에 따랐다.

연우가 동생 계수를 보내 병력을 이끌고 막게 하니, 한의 군사가 크게 패배하였다. 계수가 스스로 선봉이 되어 패배자를 추격하니, 발기가 계수에게 호소하여 말하기를, “네가 차마 지금 늙은 형을 해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계수는 형제간의 정이 없었을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연우가 나라를 양보하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롭지 못한 일이지만 당신은 한때의 분노로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죽은 후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발기가 그 말을 듣고 부끄럽고 후회스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달아나 배천에 이르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계수가 소리 내어 슬피 울며 그 시체를 거두어 풀로 덮어 매장하고 돌아왔다.

왕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계수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고 가족의 예로 대접하고 또 말하기를, “발기가 다른 나라에 병사를 청하여 자신의 나라를 침범하였으니 죄가 막대하다. 지금 그대가 그를 이기고도 놓아주고 죽이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거늘, 그가 자살하자 통곡하며 매우 슬퍼하는 것은 도리어 과인더러 도리가 없다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계수가 안색이 바뀌며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지금 한 마디 아뢰고 죽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계수가 대답하기를, “왕후가 비록 선왕의 유명으로 대왕을 세웠더라도, 대왕께서 예로써 사양하지 않으신 것은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경의 의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은 대왕의 미덕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시신을 거두어 둔 것입니다. 어찌 이것으로 대왕의 노여움을 당하게 될 것을 헤아렸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일 어진 마음으로 악을 잊으시고, 형을 상례(喪禮)로써 장사지내신다면 누가 대왕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신은 이미 말을 하였으니 비록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관부에 나아가 죽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앞자리에 앉아 따뜻한 얼굴로 위로하며 말하기를, “과인이 불초하여 의혹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 그대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잘못을 알겠다. 그대는 스스로 자책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왕자가 절하니 왕도 역시 절하였으며 매우 기뻐하며 자리를 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