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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읽는 반달곰

반달곰이 읽어주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조(기원전 18년~기원전 6년)

삼국사기 권 제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조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다 (기원전 18년 5월)
원년 여름 5월에 동명왕의 사당을 세웠다.

말갈에 대한 방어 대책 마련을 지시하다 (기원전 17년 1월)
2년 정월에 왕이 군신들에게 말했다. “말갈이 우리의 북부 국경과 인접하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용맹스러우면서도 거짓말을 잘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기를 수선하고 식량을 저축하여, 그들을 방어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을음을 우보에 임명하다 (기원전 17년 3월)
3월에 왕이 재종숙부 을음이 지혜와 담력이 있다 하여 우보로 임명하고, 그에게 군사 관계의 임무를 맡겼다.

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기원전 16년 9월)
3년 가을 9월에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범하였다. 왕은 정예군을 이끌고 재빨리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적군 중에 살아 돌아간 자가 열 사람 중에 한두 명이었다.

겨울에 우레가 일어나고 복숭아, 오얏꽃이피다 (기원전 16년 10월)
겨울 10월에 우레가 쳤고 복숭아꽃과 오얏 꽃이 피었다.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다 (기원전 15년)
4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돌았다.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 맺다 (기원전 15년 8월)
가을 8월에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었다.

사냥하여 사슴을 잡다 (기원전 14년 10월)
5년 겨울 10월에 왕이 북쪽 변경을 순행하면서 사냥하여 신기한 사슴을 잡았다.

일식이 나타나다 (기원전 13년 7월)
6년 가을 7월 그믐 신미일에 일식이 있었다.

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기원전 11년 2월)
8년 봄 2월에 말갈군 3천 명이 침입하여 위례성을 포위했다. 왕은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적은 군량이 떨어져 돌아갔다. 왕은 정예군을 선발하여 대부현까지 추격하여 싸워 이겼는데, 적병 5백여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백제와 낙랑의 우호관계가 단절되다 (기원전 11년 7월)
가을 7월에 마수성을 쌓고 병산책을 세웠다. 낙랑태수가 사람을 보내 말했다. 
“지난날 서로 사신을 교환하고, 우호관계를 맺어 한 집안과 같이 여기고 있는 터에, 지금 우리의 영역에 접근하여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고 있으니, 혹시 우리 땅을 점점 차지하려는 계획이 아닌가? 만일 옛날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면, 성을 허물고 목책을 제거하여 억측과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하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전투로 승부를 결정하자!” 

왕이 이에 대답하였다. 
“요새를 설치하여 나라를 수비하는 것은 고금의 상도이거늘, 어찌 이 문제로 화친과 우호관계에 변함이 있겠는가? 이는 당연히 그대가 의심할 일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강한 것을 믿고 군사를 출동시킨다면, 우리 역시 대응할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낙랑과 우호관계가 단절되었다.

신기한 사슴을 잡아 마한에 보내다 (기원전 9년 9월)
10년 가을 9월에 왕이 사냥하다가 신기한 사슴을 잡아, 이를 마한에 보냈다.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입하다 (기원전 9년 10월)
겨울 10월에 말갈이 북부 국경을 침략하였다. 왕이 2백 명의 군사를 보내 곤미천에서 싸웠다. 그러나 우리 군사가 패하여 청목산을 거점으로 자체 수비를 하고 있었다. 왕은 직접 100명의 정예 기병을 거느리고 봉현으로 나와 구원하였다. 적들이 이를 보고 즉시 퇴각하였다.

말갈이 낙랑의 부탁을 받고 병산책을 공격하다 (기원전 8년 4월)
11년 여름 4월에 낙랑이 말갈로 하여금 병산책을 습격해서 파괴한 다음 1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하다 (기원전 8년 7월)
가을 7월에 독산과 구천 두 곳에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 가는 도로를 차단하였다.

호랑이가 성안으로 들어오다 (기원전 6년 2월)
13년 봄 2월에 서울에서 늙은 할미가 남자로 둔갑했고,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성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모후가 죽다 (기원전 6년)
왕의 어머니가 사망하였다. 나이 61세였다.

하남위례성으로 천도를 계획하다 (기원전 6년 5월)
여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다. 그들이 변경을 침공하여 편안한 날이 없다. 하물며 요즈음에는 요사스러 징조가 자주 보이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으며, 나라의 형세가 불안하다.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행하는  중에 한수의 남쪽을 보니, 토양이 비옥하였다. 따라서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영원히 평안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하남위례성으로 백성을 이주시키다 (기원전 6년 7월)
가을 7월에 한산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을 이주시켰다.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 옮긴 사실을 알리다 (기원전 6년 8월)
8월에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을 알렸다. 마침내 국토의 영역을 확정하였으니 북으로는 패하에 이르고, 남으로는 웅천이 경계이며, 서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으로는 주양에 이르렀다.

성과 대궐을 쌓다 (기원전 6년 9월)
9월에 성과 대궐을 수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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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이 읽어주는 삼국사기, 온조왕 14년~31년(기원전 5년~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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